조금은 씁쓸한 이야기
작성일 11-05-29 19:5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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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세부아노 쪽지보내기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,733회 댓글 80건본문
어제 밤에 남대문으로해서 이태원을 거쳐 한바퀴를 뺑 돌고왔습니다.
날씨도 화창한 토요일인데다가 밤에는 또 선선해서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^-^
늘 보던 것이지만 어제도 참 많은 외국인들을 보고왔는데, 불현듯 필리핀에서 있었던 일화 하나가 생각났습니다.
장소는 세부 아얄라였네요.
더욱 정확히 Time Zone 오락실 앞 마당이었습니다.
저는 DDR을 좋아합니다. 더욱 정확히 말씀드려 'Dance Dance Revolution' 이라는 이름의 발로하는 리듬 게임을 좋아합니다.
특히, 뒤에 사람 몰리는 것을 자연스레 의식하며 점점 더 어려운 선곡을 하기를 좋아합니다. 한국에서부터의 버릇입니다. ^-^;;
DDR을 하면 보통 평상시에 기본적으로 10명 가량의 구경꾼이 몰립니다.
저랑 같이 DDR로 친해진 필리피노 그룹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고 할때면 약 20명 가량이 기계를 둘러싸고
다른 손님들은 기계를 잡을 수도 없을 만큼 크레딧을 올려놓고 그룹 전체가 배가 고파질 때까지 DDR을 하고는 했었답니다.
그 날도 여느 때 처럼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먼저 아얄라에 가서 DDR 기계를 잡았습니다.
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들리는 한국인의 음성....
한국 남녀 커플이었습니다.
아얄라에서 정말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한국인이라지만,
DDR 하고 있는 중에 제가 하고 있는 모습을 한국인에게 보인 것을 의식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.
10년 전, 한국 대형 오락실에서 DDR을 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새로운 느낌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.
한국 여성분이 남자 친구분께 얘기합니다.
[와,, 저 아저씨 잘한다.,,]
그러자 남자분 [ 나도 좀 하는데, 같이 하자고 해볼까? ]
그러자 여자분의 대답이 가관입니다.
[오빠 근데, 영어로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어??]
......................
갑자기 평상시에 굉장히 익숙했던 저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.... ㅜ_ㅜ
기분이 살짝 묘했지만,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잠자코 게임에 열중합니다.
그러자 남자분 제게 가까이 다가와 하는 말이
[익스큐즈미~ 렛츠 플레이 투게더 오케이???]
저도 어쩔 수 없이
[슈얼~ ^-^]
.......................
한국인이었지만 한국인임을 밝히지 못했네요.
잠시 후 끝나면 서프라이즈 해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!
그 순간 도착한 필리핀 DDR 친구들 그룹...
반갑게 저와 비사야로 인사...
미국, 영국, 일본 혼혈로 집 잘 살고 학벌 좋고 영어 훌륭한 그 친구들이 그 날따라 비사야만 난발...
졸지에 완벽 필리피노로 자동 인증.
'아... 이거 서프라이즈 할 타이밍을 놓쳤구나..' 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!
갑자기 한국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!
그 때의 그 전화 한통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^-^;
아주 기쁜 마음으로~ [여보세요~~] 라고 하며 자랑스럽고 큰 목소리로 한국 사람이었음을 인증하려 했습니다.
그러자 뒤에 서 있던 여자분 하는 말
[와... 오빠~ 이 아저씨 한국말 엄청 잘한다~!]
속으로 '그래요 나 한국말 잘해요...ㅜ_ㅜ'라고 삭히고 말았답니다.